제39차 바이오안전성·바이오산업 포럼세미나
아실로마 50주년 회의와
바이오신기술 거버넌스의 미래
지난 5월 28일 서울 영등포역 3층 대회의실에서 아실로마 회의(Asilomar Conference) 50주년과 바이오신기술 거버넌스의 미래를 주제로 제39차 바이오안전성·바이오산업 포럼세미나가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는 아실로마 회의 50주년을 맞아, 회의의 기원은 물론 지난 50년간의 생명공학 상업화 및 제도화의 흐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아실로마 회의는 지난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전자변형기술의 안전과 윤리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제 과학자 회의로, 생명공학에 대한 연구자들의 책임과 사회적 합의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회의로 평가된다. 이번 세미나의 발제자 3인은 아실로마 50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기술과 사회의 접점에 대한 논의를 경험하며 느낀 점을 주제 발표로 정리했다.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실로마 회의는 유전자변형기술(recombinant DNA, rDNA)의 잠재적 위험성과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 논의한 역사적인 회의로, 생명공학 발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남겼다. 유전자변형기술은 1970년대 초 Paul Berg와 Janet Mertz 등이 개발했으며, 이는 특정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생물학적 기능을 생성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초기 실험에는 암 유발 바이러스(SV40)와 박테리아 유전자를 조합하는 위험한 시도가 포함돼 있었고, 해당 기술이 실험실 밖으로 유출될 경우 생태계나 인간 건강에 미칠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과학자들은 1974년 자발적으로 관련 연구를 중단했고, 이듬해인 1975년 2월 150여 명의 과학자, 변호사, 저널리스트가 아실로마에 모여 기술의 안전성과 윤리성에 대해 3일간 논의했다. 회의 결과, 연구는 재개하되 위험 등급에 따라 실험 환경과 안전 기준을 구체화하고, 자율적 규제와 연구 책임 원칙을 설정하자는 합의가 도출됐다. 이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성찰하고 사회적 책임을 모색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같은 시기 스탠포드 대학은 유전자변형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고, 이후 Herbert Boyer와 Robert Swanson이 Genentech을 설립해 인간 인슐린 개발에 성공하면서 기술의 상업화가 본격화 된다. 1980년 미국은 Bayh-Dole 법을 제정해 대학과 연구기관이 정부 지원 연구 결과의 특허를 보유할 수 있게 하면서 생명공학 산업은 제도권 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아실로마 회의는 과학자의 자율성과 책임, 기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선제적 논의라는 점에서 생명공학계에 긍정적인 유산으로 남았지만, 이후 이어진 상업화 흐름은 공공성과 윤리성의 균형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이번 세미나에서 강조된 아실로마 정신은 세 가지 핵심 가치로 요약된다. ▲불확실한 위험에 대한 사전주의 원칙 ▲과학자 주도의 자율 규제 ▲시민 참여와 동의를 중시하는 사회적 수용성이다. 이 가치는 1975년 회의에서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구 중단을 선언하고 안전한 연구 조건을 모색했던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지금의 기술 환경에 맞게 재해석된 것이다. 그러나 아실로마 회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했다.
당시 회의가 시민사회의 참여 없이 전문가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자율 규제가 실제로는 외부 통제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현대의 기술 거버넌스에도 적용되며,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AI와 바이오 기술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세미나에서는 생명공학 기술 대응을 위한 새로운 논의 틀인 BBCC(Biotech Beyond Conventional Containment) 개념이 소개되었다. 이 개념은 환경 안전 수준 설정, 생태 보전, 공공 인프라 구축, 안전 설계 지침 등 사회적· 정책적 과제를 포괄한다. 또한 AI의 생명공학 응용에서 비롯될 수 있는 이중용도 (dual use) 위험에 대한 논의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 특히 글로벌 대응 차원에서는 시민사회와 젊은 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는 GNOME(Global Network for Organisms and Multi-disciplinary Exchange) 구축이 제안됐으며, OECD 등과 연계한 국제적 정책 프레임의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인공유전체 기술은 전체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설계하고 합성하는 기술로,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히 유전자를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새롭게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백신 플랫폼, 바이오 연료 생산, 합성 미생물 개발 등 다양한 산업적 응용이 가능하며 국가 간 협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환경 노출 및 안전 문제도 주요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생물학적 유출 방지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특정 조건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도록 유전자를 설계하는 ‘Genetic Firewall’,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염기를 사용해 외부 환경에서는 작동이 안되도록 하는 인공 염기 시스템, 생존과 생식을 이중으로 통제하는 시스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존 LMO 규정만으로는 이러한 신기술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생명공학 기술의 환경 안전성을 위한 별도의 기준, 특히 환경 노출에 대한 새로운 안전 등급 체계(ESL: Environmental Safety Level) 마련이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유전체 및 합성세포 기술에 대한 국제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며, GNOME, OECD, CBD 등 국제 플랫폼과 연계한 규제 체계 정비가 제안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지만 생물다양성 보전, 공공 안전, 투명한 정보 공유체계 등 다양한 사회적 조건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다양한 의견의 교환
패널토의에는 발표자를 비롯해, 경북대 미생물연구소 김일권 교수, 한남대 법무법학과 조인성 교수, 국립생태원 천성준 박사, 숲과나눔 풀씨행동연구소 최준호 소장이 참여했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김기철 센터장은 “1975년 아실로마 회의를 돌아보고 바이오신기술, 바이오의 미래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다뤄본 자리였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훌륭한 발표들과 GMO와 바이오신기술에 대한 안전관리 정책, 개선 방안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모아 향후 KBCH의 활동에 반영할 것.”이라 전했다. 한편, 한국바이오안전성 정보센터는 기존 ‘KBCH 포럼세미나’의 명칭을 ‘바이오안전성·바이오산업 포럼세미나’로 변경하며, 더 많은 국민과 폭넓고 열린 소통을 예고했다. 포럼세미나는 GMO 및 바이오신기술 관련 법과 정책은 물론, 완전표시제 등 주요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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