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장
“미래 농업은 단순 생산을 넘어, 사회가 믿고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농약 사용을 줄이고, 이상기후에도 견디며 예측한 수확이 이루어지는 작물. 이 마법같은 작물은 생명공학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수확량이 아닌, 신뢰가 중요시되는 새로운 생산과 소비 구조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식량 생산 시스템의 중심에는 여전히 생명공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 조혜선 센터장을 만나 생명공학을 통한 식물개량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에서 근무 중인 조혜선입니다.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는 기후·환경변화 대응을 위한 식물개량 원천기술 개발과 식물 바이오소재의 오믹스-기반 대사생합성 조절 및 생산 원천기술 연구, 식물의 생명활동 원리를 밝히기 위한 유전자 기능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기후위기라는 표현처럼, 고온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온도가 오르는 것이 작물의 생육에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한반도의 농업은 오랫동안 뚜렷한 사계절에 맞춰 정교하게 진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후변화는 이 순환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작물은 말없이 기후 이상에 반응하고 있으며, 그 생육 패턴은 이미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먼저 기온 상승이 작물 생육 한계를 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912년 이후 1.8℃ 이상 상승했는데, 이는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벼, 고추, 배추와 같은 주요 작물은 일정 온도 범위에서만 정상적으로 자라는데, 이 범위가 무너지면 꽃이 피지 않거나,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건가요?
단적인 예로 모내기 시기가 과거보다 평균 5~10일 빨라졌습니다. 시작이 빠르다고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습니다. 작물 재배는 앞당겨졌지만 오히려 수확은 불안정해졌습니다. 이삭이 나오는 시기가 고온기와 겹쳐 불임 이삭이 증가하고, 결국 수확량과 품질 모두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 반복되는 이상기후가 작물에 부가되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봄철 갑작스러운 더위는 꽃이 빨리 피게 하지만, 그 직후 한파나 비가 오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낙과가 됩니다. 여름의 가뭄과 폭우는 뿌리 발달을 방해하고 병충해를 유발해 작물에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작물에 대한 질병이 환경의 변화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던 지역까지 확산되고, 새로운 병해충이 북상하면서 방제를 위한 농약 사용이 늘어 잔류물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리란 것이 전문가들 의견인데, 장기화될 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기후가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가장 먼저 ‘작물’을 통해 눈에 보입니다. 농업 생태계와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작물의 생육 불안정은 단지 수확량 감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농민의 소득 감소, 지역 농업 구조의 붕괴, 식량 가격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식량 주권에도 심각한 도전을 줍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에 대한 경고장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먼저 기후변화는 앞으로 닥칠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밭과 논, 과수원에서 농민의 손발과 작물의 몸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는 재난입니다. 우리가 먹는 주요 작물들 중 많은 수가 이미 기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그 피해 양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작물의 문제를 넘어서 결국 사람과 식탁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작물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읽는 일은, 곧 우리 미래 식량을 지키기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기후위기 속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대응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의 유전자’ 안에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오랜 시간 교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지만, 이제는 식물의 유전자를 직접 설계하거나 교정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명공학 작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몬산토社는 옥수수 유전자에 가뭄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유전자(CspB)를 삽입해, 잎의 수분 손실을 줄이고 뿌리 발달을 촉진하는 옥수수를 개발했는데 지난 2012년 미국 중서부 대가뭄 시기에 다른 옥수수보다 평균 5~15% 높은 수확량을 기록했습니다. 마치 식물에 기후 센서와 자가조절 기능을 탑재한 셈으로, 대표적인 GMO 작물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CRISPR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식물의 자체 유전자를 정밀 편집하는 방식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외부 유전자를 넣지 않아 자연변이 수준에 가까워 안전성과 소비자 수용성이 높은데. 벼(잎 표면의 기공 수를 줄이는 유전자를 교정하여, 수분 증발을 줄이고 고온기에도 수확량 유지), 토마토(염분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교정해, 염해에서도 성장) 등이 실제로 개량됐습니다.
국내에서 개량이 완료되거나 진행 중인 기후위기 대응 작물에는 무엇이 있나요?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랜 시간 전통 육종 기술과 마커보조육종(DNA 지도를 통해 병에 강한 식물만 빠르게 선별해 교배하는 방법)과 같은 정밀한 방법을 함께 활용해 변화에 강한 작물 품종을 개발해 왔습니다. 고온에서도 밥막을 유지하는 벼(해들,한들), 고추, 마늘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작물들은 분명 Non-GMO 방식으로 탄생한 한국 농업의 기술적 성과이지만 기술도 환경도 변화가 더 빨라지는 지금, 전통 육종의 느린 속도를 보완할 생명공학 기술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전통 육종 방식으로는 현재의 기후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울까요?
전통 육종은 수천 년간 인류가 작물을 길러온 방식입니다. 자연교배와 선발을 반복하면서 좋은 형질을 가진 식물을 찾아내고, 더 나은 품종으로 발전시켜 왔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 고온, 병해충, 염해 등 다양한 위협이 동시에 몰려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 스트레스 속에서 작물을 개선하는 데 최소 10년씩 기다릴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전통 육종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느리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전통 육종의 핵심은 ‘좋은 개체’를 선택해 계속 교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가 이런 좋은 성질을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의도하지 않은 나쁜 형질이 함께 따라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염분에도 강하고, 더위에도 잘 자라고, 병에도 강한 복합형질 작물을 만들려면 수십 년의
교배와 실험이 필요합니다. 생명공학을 활용한 품종 개량의 장점도 분명합니다. 빠르고 정확합니다. 작물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설계하거나 편집해, 원하는 형질만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전통육종과 비교하면 개발 기간은 절반 이하이고 정밀도는 훨씬 높은 수준이며 안정성의 경우 눈에 보이는 생육 중심 검증인 전통육종과 달리 생명공학을 활용한 육종은 보이지 않는 분자 수준까지 점검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90년대보다 여름 폭염일 수가 2배 이상 늘었고, 병해충 출현 시기도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피해를 복구하는 게 아니라, 미리 버틸 수 있는 작물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유전자교정, 유전자변형으로 개량된 작물은 기후위기 대응 능력 외에 기존의 작물과 차이점은 없나요?
아마 안전성에 대한 궁금증에서 질문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작물을 개량한다는 건 단지 ‘더위를 이기는 작물’을 만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후형 작물은 단지 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수백 개 항목의 검증된 과학적 설계가 들어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토양을 보호하고, 병을 줄이고, 수확을 안정시키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셈입니다. 전통적인 육종은 오랜 교배와 우연한 돌연변이를 활용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성질이 섞이는 일이 많지만 유전자변형 작물, 유전자편집 작물은 정확히 어느 유전자를, 어떻게 수정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정밀하고 안전하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전자교정 또는 유전자변형 기술이 사용된 경우에는, 단 하나의 형질만 바꾸더라도 전체 작물에 대한 과학적 안정성 검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전자변형 작물 또는 유전자편집 작물은 보통 ‘한 가지 목적 유전자’를 정밀하게 편집하거나 삽입하지만, 생명체는 수많은 유전자와 대사경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화(비의도적 영향)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검증합니다.
기후 대응 유전자 하나를 고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작물이 현장에서 문제없이 자랄 수 있을까?’를 수백 가지 항목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작물 하나하나의 기능만이 아니라, 전체 농업 시스템의 균형을 흔들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은 이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과학적 도구이며, 신중하게 설계되고 충분히 검증된 작물만이 현장에서 사용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작물 개량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기술은 세계 수준, 상용화는 제자리.” 지금 한국의 작물개량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CRISPR 유전자가위, 정밀 마커보조육종(MAS), 전사체 기반 유전자 분석 등 첨단 기술이 벼, 콩, 감자, 고추 등 다양한 작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대학 연구소가 주도하며 민간은 종자 보급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화는 현재 불가능합니다. GM 작물은 위해성심사 및 재배승인을 받지 못하면은 국내 재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기술은 온실 실험 또는 격리재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국, 일본, 호주 등은 이미 일부 유전자교정 작물을 GMO와 별도로 인정하고, 간소한 절차로 상업화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신속하게 새로운 작물을 보급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적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적 수용성과 정책 혁신 없이는 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이 밖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과학적 소통, 안전성 검증의 투명성, 규제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작물은 이제 자연의 선택만으로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생명공학은 작물에 ‘스스로 살아남는 능력’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이며, 이것은 식량을 지키는 새로운 방어선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GM 작물의 상업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나요?
GM 작물은 현재 전 세계 29개국, 약 2억 헥타르 이상의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재배되었지만, 인체 유해성이 입증된 사고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 ‘관리 실패’로 인한 논란은 발생한 바 있으며, 이는 GMO 자체의 위험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과학계는 “GMO가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은 WHO, FDA, EFSA 등 국제기구의 공식 입장입니다. “현재까지 GMO 식품이 인체에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는 확인된 바 없다.” 즉, 유전자 삽입이 기존 식품보다 위험하다는 증거는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는 관리 체계가 대폭 강화된 상태입니다. 격리 시험 기준이 강화됐고 표시제 및 이력 추적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주요 선진국의 경우, GEO와 GMO의 구분을 통해 GE 작물의 규제 간소화 방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GMO에 대한 주요 논란은 ‘작물의 본질’이 아닌 ‘운영과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 사례들을 통해 확인된 것은, GMO 자체의 위험보다 ‘어떻게 관리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날 GMO는 더욱 정밀한 관리 시스템과 제도 안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센터장님께서 식물을 연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GM 식물 연구를 통해 기대하시는 가능성, 미래는 무엇이신가요?
왜 식물을 연구하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의 시작은 결국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날씨가 바뀌면 제일 먼저 반응하고, 기후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쓰러집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조용한 반응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식물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기 때문이죠. 기후변화, 인구 증가, 식량 불안정, 이 모든 위기의 중심엔 ‘식물’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식물은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지구 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생명 기반 인프라입니다. 저는 연구자로서 이런 질문에 답하고 싶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어떤 식물이 살아남아 우리를 살릴 수 있을까?” GM 식물 연구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남는 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유전자변형 식물을 인공적이고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로 GM 기술은 식물에게 정확히 어떤 능력을 부여할지를 설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능력은 더 많이 자라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더 더운 여름에도, 더 적은 물로도, 더 많은 병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생존 전략입니다. 저는 유전자를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 환경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식물은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우리를 지키는 생명입니다. 저는 그 식물에게 더 강한 생존력을 주기 위해 연구하고,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먹거리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공학과 GMO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명공학은 이제 단지 실험실의 기술이 아닌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식량안보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식탁을 지키기 위한 과학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작물 생명공학은 거대한 실험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식탁을 위한 기술입니다. GMO라는 말에는 아직도 오해와 걱정이 함께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GMO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견디기 위한 선택입니다. 생명공학 작물은 철저한 안전성 검증을 거쳐야만 시험 재배가 시작됩니다. 요즘의 연구는 대부분 외래 유전자를 넣지 않고, 작물 스스로의 유전자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공공기관과 학계의 검증 시스템 속에서,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농업이 기후변화로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은 그 위기 속에서, 농업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도구이자 기회입니다. 과학은 과학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생명공학은 국민 모두가 함께 질문하고, 함께 지켜봐야 하는 공공의 영역입니다. 저희는 묻고, 실험하고, 증명하며, 한 걸음씩 정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질문해 주시고, 함께 지켜봐 주십시오. 과학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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