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그리고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우리 사회가 유전자변형 기술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소비자가 ‘유전자 변형’을 무작정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잡종 교배 방식에 의한 육종(育種) 기술을 이용하는 유전자 변형은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다만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생명공학 기술’(bioengineering)을 이용하는 유전자변형기술에 의한 유전자 변형을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 생명공학 기술이 ‘신(神)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수준의 어설프고 엉뚱한 반(反)과학적 인식 때문이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의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응용되고 있는 생명공학(BT) 기술이 유독 농수축산 분야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전자변형(GM) 작물의 재배와 개발이 정상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미래의 식량 안보를 심각하게 걱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매우 절박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유전자변형 작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국가의 국제 정치공학적·경제적 입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생명공학을 이용한 유전자변형 기술을 처음 개발했고, 대규모 농장에서 소품종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미국에서는 GMO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전통 농경 방식을 고집하는 소규모 농장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추구하는 유럽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유전공학적 유전자변형 기술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그런데 식량 안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하필이면 유럽의 입장을 추종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 오히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기술을 거부하기는커녕 누구보다 앞장서서 수용해야만 하는 절박한 형편이다. 실제로 우리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녹색혁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경험도 가지고 있다. 1970년대에 개발해서 해방 이후 최초로 쌀 자급을 가능하게 해준 ‘통일벼’도 전통적인 육종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유전자변형 작물이었다. 그런 우리가 21세기에 들어서서 경제적으로 넉넉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농수축산물의 품종 개량을 위한 첨단 GM 기술을 거부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인 것이다.
유럽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완전표시제’
‘GMO 완전표시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GMO(유전자변형생물체) 원료를 사용한 모든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에는 무조건 ‘GMO’를 표시하는 것이 ‘GMO 완전표시제’다. 제조·가공 과정에서 유전자변형 물질(DNA·단백질)이 완전히 제거돼 GMO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간장·대두유(콩기름)·전분당(물엿)·맥주 등도 예외가 아니다. GMO 원료의 ‘이력추적제’를 시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GMO 완전표시제는 만만한 제도가 아니다. 이력추적제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생산·유통 현장에서 GMO 원료의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심각한 걸림돌이다. 이력추적제가 빠진 완전표시제는 마치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은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칫하면 ‘비유전자변형’(Non-GMO)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만 키우는 엉뚱한 제도로 변질될 수도 있다. ‘GMO 완전표시제’는 GMO 기술을 반기지 않는 유럽이 자신들의 농수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GMO의 인체 위해 가능성을 강조하는 소비자의 ‘알권리’는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거세게 밀어닥친 자유무역 원칙을 거부하기 위한 유럽의 옹색한 핑계일 뿐이다. 물론 유럽은 GMO 완전표시제를 통해 농수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나 GMO 기술이 대세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이 GMO 완전표시제를 계속 고집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GMO 완전 표시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혼란스럽다. 가짜·유사(類似)과학에 극도로 취약한 소비자단체가 완전표시제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유럽의 과학계도 인정하는 GMO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국내산 농산물 소비가 늘어나는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농민들도 GMO 완전표시제를 찬성한다. 외식업계도 소비자의 ‘신뢰도 제고’와 ‘욕구 충족’을 핑계로 완전 표시제를 환영하고 있다. 반면에 식품산업계는 GMO 완전표시제에 격하게 반발한다. 식품 가격이 오르고, 식품시장이 ‘GMO 제품’과 ‘Non-GMO 제품’으로 이원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강조한다. 완전표시제를 시행하면 비유전자변형 원료의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특히 곡물 자급률이 19.5%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게 GMO 완전표시제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정쩡한 ‘중립’을 고집하고 있다.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소비자단체와 식품산업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식약처의 옹색하고 부끄러운 선택이다. 전 세계 과학계가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GMO의 안전성을 유독 식약처가 앞장서서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소비자에게 식품 안전에 대한 과학적 팩트를 앞장서서 알려줘야 하는 식약처의 존재 이유까지 부정당할 수 있다.
정치권이 나름대로 정치적 타협안을 내놓았다. GMO 완전표시제를 식품산업계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자는 것이다. 간장과 맥주는 이미 Non-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고, 콩기름은 전량 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GMO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억지 주장을 물리칠 과학적 이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우리 정치권의 궁여지책이다. 큰 목소리로 외치기만 하면 어떠한 규제도 가능하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모든 제도적 규제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따르게 된다. GMO 완전표시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GMO 완전표시제를 거부하는 이유도 ‘GMO 이력 추적’의 높은 사회적 비용이 낭비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력 추적 제도가 빠진
GMO 완전표시제는 허울뿐인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언뜻 ‘알권리’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역시 국민의 알권리를 명분으로 시행하고 있는 ‘성분’이나 ‘원산지’ 표시 제도가 과연 우리 소비자의 실질적인 알권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포장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성분 목록을 실제로 활용하는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GMO 완전표시제는 현실적으로 아무 편익도 기대할 수 없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일 수밖에 없다. 윤리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 중
10%가 하루 세 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유엔이 제시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도 ‘빈곤’과 ‘기아’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이유만으로 국제 사회의 절박한 노력을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음모론에 빠져드는 소비자
GMO 식품의 위해성은 ‘육종(育種)’ 기술로 품종을 개량해 생산한 전통 식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과학적 결론이다. 1만2천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육종 기술도 사실은 농작물이나 가축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방법이다. 생명공학 기술이 아니라 ‘잡종교배’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결국 GMO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위해 주장은 도를
넘어선 억지일 수밖에 없다. 사실 GMO의 인체·환경 안전성에 대한 더 이상의 우려와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GMO의 위해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결론은 분명했다. 현대 과학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GMO는 전통적인 육종 기술로 개발한 농작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안전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108명과 미국 과학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GMO가 미래의 식량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실제로 1995년 생명공학적 GMO 기술이 처음 등장한 이후 30여 년간, 전 세계 어디에서도 GMO 식품의 위해성이 명확하게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그런데도 GMO를 거부하는 소비자단체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소비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과학적·합리적 결론을 폄하하는 음모론과 억지는 설자리가 없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는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전예방의 원칙’도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식품의 위해성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식품이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도 없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GMO 위해성의 정체가 묘하다. GMO가 복어 독이나 버섯 독처럼 누구나 조금만 먹어도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소비자는 어디에도 없다. 인체 ‘발암성’이 의심되고, 알레르기가 걱정된다는 수준의 우려가 고작이다.
그런데 암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기도 하다. 상당한 양의 발암 식품을 장기간에 걸쳐 지속·반복적으로 섭취해야만 암에 걸리게 된다. 발암물질을 만지거나 쳐다보기만 해도 암에 걸리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그마저도 개인에 따른 편차가 대단히 크다. 똑같은 식생활을 하는 가족 구성원이 모두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암이 발생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체 발암성을 확인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 발암물질을 분류하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971년부터 인체 발암성을 분명하게 확인한 ‘1군’ 발암물질은 고작 118종뿐이다. 술·담배·젓갈·햇빛이 모두 1군 발암물질이다. 그런데도 1군 발암물질의 ‘표시제’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표
적인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도 쉽지 않다. 숯불구이의 ‘불맛’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저항 때문이다.
알레르기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식약처가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식품이 적지 않다. 달걀·우유·땅콩·대두·밀·게·새우·오징어·고등어·복숭아가 모두 식약처가 강조하는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다. 땅콩이나 복숭아를 먹고 목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알레르기 유발 식품에 ‘표시제’를 시행하자는 소비자단체는 없다. 더욱 이 GMO가 실제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다.
유전자변형은 오랜 전통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많이 배우고 출세를 할수록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지혜가 담긴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여버리면 이듬해 봄에 싹을 틔울 수가 없다. 곧바로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생에서는 익었다고 고개를 숙이는 벼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벼는 이미 자연에서 도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칠고 위험한 야생에서 맹목적인 겸손을 무작정 미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벼는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변종이다. 누가 원해서 그런 변종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대안으로 우연하게 나타난 결과였을 뿐이다. 그런 변종 중에서 생존에 적합한 것만 살아남게 된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다.
자연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던 변종의 가치를 찾아낸 것이 1만2천년 전 ‘농업혁명’이었다. 인간이 자신에게 활용 가치가 있는 변종을 임의로 선택해서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그런 ‘인공선택’(artificial selection)이 우리에게만 유리한 일방적인 선택이었던 것은 아니다. 벼는 고개를 숙임으로써 인간의 도움으로 다른 식물들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실제로 인간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세웠던 야생 벼는 자연에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농작물은 오랜 세월에 걸친 육종의 산물이다. 감자는 야생 감자에서 육종에 의한 유전자변형으로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 솔라닌을 제거한 잉카의 전통적 육종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온순한 소나 말과 같은 가축도 예외가 아니다. 육종에 의해 가능해진 ‘작물화’와 ‘가축화’가 인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현대의 육종은 단순히 원하는 형질을 가진 돌연변이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수준을 넘어서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1865년 멘델이 찾아낸 유전법칙을 근거로 의도적인 잡종교배를 통해 원하는 형질의 변종을 만들어낸다. 야생종의 본성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애써 찾아낸 형질이 퇴화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현대적 육종의 중요한 목표다. 특히 반복적인 근친교배로 원하지 않는 형질이 발현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농작물과 가축의 입장에서 육종과 같은 유전자변형 기술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욕심냈던 ‘우생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육종에 의한 유전자 변형으로 생산된 신품종의 인체 안전성이 언제나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농수산물의 인체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특히 발암성처럼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GMO도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점에서는 육종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박테리아 파지(phase)의 제한효소를 사용하거나 CRISPR-CAS9과 같은 유전자편집 기술을 이용한다. 박테리아·바이러스에서 찾아낸 유전자를 농작물과 가축에게 직접 삽입한다. 전통적인 육종 기술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GMO의 현실적인 가치는 부정하기 어렵다. 재배에 필요한 제초제의 비용을 절반 이상 절감할 수 있고, 유통기한도 길어지고 품질도 개선된다. 무엇보다도 수확량도 10% 이상 늘어난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GMO 기술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식량 생산의 어려움
산업혁명으로 사회의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지구상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식량 수급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류 역사에서 인구가 처음으로 10억을 넘어선 것은 1803년이었다. 1798년 영국의 고전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식량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지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만2천년 전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인류의 농업 방식은 기술적으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식량 생산량은 농경지의 면적과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의 규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맬서스의 예측은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 혁신의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었다. 실제로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 효율적인 수리(水理) 시설이 등장하고, 전통적인 육종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농업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 덕분에 농업 생산성이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미국의 단위 면적당 옥수수 생산량이 1800년과 비교해서 6배나 늘어났고, 1950년에서 1980년까지 전 세계의 식량 생산은 2.6배 증가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도 세계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27년에 세계 인구는 20억을 돌파했고, 1960년에는 30억을 넘어섰다. 오늘날의 세계 인구는 80억을 넘어섰다. 2038년에는 90억을 넘어서고, 2050년에는 100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인류의 평균 수명도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서 이제는 70세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2세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현재 지구상의 식량 사정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넉넉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양이 현재 인구의 150%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규모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지금의 식량 생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도 97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식량농업기구(FAO)의 공식적인 전망이다. UN이 2030년까지 세계의 기아율(飢餓率)을 0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의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 덕분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대적 화학 농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인구의 증가와 급속한 도시화로 식량 생산에 필요한 경작지의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의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빠르게 늘어나는 육류의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어렵게 생산한 곡물의 30%를 가축의 사료로 쓰는 중이다. 식량의 수확·저장·유통 과정에서의 손실도 적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의 30%에 해당하는 13억 톤이 낭비되고 있는 형편이다. 국제 정치적 이유로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는 지역도 적지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줄어들던 기아율(飢餓率)이 최근에는 다시 악화하고 있다. FAO에 따르면 현재 80억 명의 세계 인구 중에서 8억 2천만 명이 심각한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전 지역과 라틴아메리카, 서남아시아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심지어 식량 상황이 비교적 좋은편인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도 약 8%의 인구가 충분한 영양 섭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심할 수 없는 우리의 식량 안보
우리도 반세기 전 산업화를 시작하기까지는 전통적인 농경 국가였다. 일상적인 식량 자급률이 100%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적·정치적 이유로 적지 않은 사람이 속절없이 기아(飢餓)에 허덕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인구가 줄어들었다. 18세기의 조선에서는 당시 인구의 45%에 해당하는 360만 명이 굶주림에 허덕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이후에도 식량 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1948년에 미곡법 등을 제정해서 정부가 직접 식량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기도 했지만, 사정은 개선되지 않았다. 1963년에는 해외의 원조로 800만 톤의 양곡을 수입해야만 했다. 특히 주곡인 쌀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강력한 혼분식 정책을 강요하기도 했다. 영양학적으로 쌀보다 보리와 밀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궤변도 등장했다. 1974년에는 정부미의 도정률(搗精率)을 7분도로 제한하고, 쌀 막걸리의 생산과 농지의 전용(轉用)을 금지하기도 했다.
식량 수급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보급된 ‘통일벼’ 덕분이었다. 통일벼는 서울대의 허문회 교수가 1971년 포드재단과 록펠러재단이 필리핀에 설립한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 단립종인 자포니카와 장립종인 인디카를 교배해서 개발한 다수확 품종인 IR667을 말한다. 재래종보다 생산성이 30%나 개선된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400톤 수준이던 쌀 생산량이 1978년에는 600만 톤으로 늘어났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쌀을 자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통일벼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욱이 길이가 짧고, 대가 약한 통일벼 볏짚은 일상적인 활용이 불가능했다. 결국 정부가 앞장서서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개량하고, 가마니를 마대로 대체하고, 가축용 사료를 따로 마련해야만 했다. 게다가 통일벼는 생육 기간이 너무 길어서 밀이나 보리의 이모작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1980년대에 경제 사정이 개선된 덕분에 식량의 적극적인 수입을 통해 식량 문제가 해결되면서 소비자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통일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우리의 식생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주곡인 쌀의 연간 1인당 소비량이 1970년 136.4㎏에서 2018년 61.0㎏으로 줄어들었다. 하루 에너지 공급량 중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도 1956년 56.0%에서 2018년 23.1%로 줄었다. 그 대신 설탕류(0.6→8.5%), 육류(2.0→8.8%), 유지류(0.4→19.6%) 등의 비중이 커졌다. 그렇지만 쌀 생산량은 총수요 482만 톤보다 144만 톤이나 초과하고 있고, 논벼를 재배하는 농가의 비중은 여전히 37.9%나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의 식량 안보는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2018년 곡물 자급률은 21.7%까지 떨어졌고, 가축 사육에 활용되는 사료용 곡물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도 46.7%에 불과한 형편이다. 1970년 23.3% 수준이던 경지 면적이 2016년에는 21.6%로 감소했다. 국민 1인당 경지 면적도 0.04헥타르로 세계 평균인 0.24헥타르의 17%에 불과한 형편이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도 심각하다. 2018년 농촌 인구는 231만 명이고, 65세 인구의 비율이 44.7%나 된다. 산업화를 통해 확보한 외화 덕분에 해외에서 충분한 양의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식량 증산을 위한 과제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1960년대의 녹색혁명이 완성되면서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정체 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1980년부터 세계적으로 1인당 소비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농경지의 면적을 확대하고,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향상시켜야 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농작물이나 가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사정도 심각하다. FAO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의 비료 사용량은 헥타르당 268㎏으로 미국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고, 농약 사용량도 헥타르당 11.8㎏으로 미국의 4.5배 수준이다. 비료와 농약의 남용과 오용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에 의한 사망자 중 28%가 농업 인구라는 사실을 근거로 비료 사용량의 적극적인 감축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 시설이 거의 없는 세종시와 전남 해남의 미세먼지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그렇다고 화학비료의 사용을 무작정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 화학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에서의 탄소, 질소, 인의 순환을 유지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전통 농업에서의 퇴비나 삼포제가 바로 그런 노력이었다. 우리가 식품을 소비하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설물이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농작물을 포함한 식물과 미생물의 영양 성분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라는 뜻이다.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도시화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생활 폐기물의 재활용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특히 수세식 화장실과 생활하수 처리장은 대도시의 건강한 위생 환경을 위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고급 생활양식이다. 대도시에서의 위생적인 생활환경을 위해서는 배설물과 생활하수의 재활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화학비료는 생태계의 재활용 과정을 회복시켜주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농약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써 재배한 농작물을 병해충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의 경우에는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유기농산물의 품질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이웃의 아픔을 무시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인식이다.
GMO에 대한 거부감 극복
GMO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GMO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만으로는 ‘신의 영역’을 핑계로 생명공학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시민단체를 설득할 수 없다.
GMO에 대한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은 식량의 생산·유통·소비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사회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소비자가 GMO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 사회의 식량 안보를 보장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설득이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더욱이 소비자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농수축산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기술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생명공학적인 GMO 개발 노력이 바로 그런 기술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125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TEL 042-879-8318 | FAX 042-879-8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