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설득보다 느린 숙의: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
김영욱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유전자변형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 혹은 일반적으로 많이 통용되는 유전자변형 식품은 현대 생명공학 기술이 농업과 식량 생산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로서, 식량 안보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대와 함께 다양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GMO는 병충해 저항성 강화, 생산량 증대, 농약 사용 감소 등의 잠재적 이점을 제공하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 건강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장기적 영향에 대한 우려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GMO는 단순한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정치, 경제, 윤리, 문화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사회적 쟁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GMO를 둘러싼 논쟁은 현대 위험사회가 직면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통적인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전문가가 위험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위험 인식을 조정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였다. 즉, 위험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사실이며, 공중의 우려는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결핍모형(deficit model)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관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GMO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위험에 대한 공중의 반응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의 이해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일한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더라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해석하며, 위험 인식은 과학적 정보만이 아니라 가치관, 신념, 사회적 경험, 제도에 대한 신뢰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위험 대상에 대해서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소스의 영향을 받아 각자의 태도를 굳건하게 형성하게 되는 상황에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나 태도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불확실성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아가고 있다.
불확실성: 과학의 미지(未知)를 넘어 사회적 합의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과학적 불확실성(scientific uncertainty)의 문제이다. 현재까지 다수의 과학 연구들은 승인된 GM 식품이 기존 식품과 비교하여 특별한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한다는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본질적으로 잠정적 지식 체계이며, 모든 잠재적 영향을 완전히 규명할 수는 없다. 특히 장기적 생태계 영향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영향과 같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영역은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남긴다. 따라서 GMO 논쟁은 과학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가를 논의하는 어려운 문제를 동시에 포함한다.
GMO를 둘러싼 위험 커뮤니케이션에서 불확실성은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작동한다. 먼저 특성 불확실성(trait uncertainty)은 개인이 본래 불확실한 과학 정보나 위험 정보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잠정성, 확률적 표현, 전문가 간 의견 차이를 자연스러운 과학 과정으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불신이나 위협의 신호로 해석한다. GMO에 대한 태도 역시 이러한 개인적 성향의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낮은 사람은 GMO 안전성에 대해 아직 장기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설명을 과학의 신중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위험이 은폐되어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상태 불확실성(state uncertainty)은 특정 GMO 정보나 메시지를 접한 뒤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상황적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GMO의 건강 영향, 생태계 영향, 유전자 이동 가능성, 농약 사용과의 관계, 기업의 종자 지배문제 등은 모두 공중이 판단하기 어려운 복합적 쟁점이다. 특히 GMO 논의는 과학적 안전성 평가만이 아니라 식품 선택권, 표시제, 기업 신뢰, 농업 구조, 생태 윤리와 연결되기 때문에 공중은 단순히 사실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믿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자체를 불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GMO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공중이 느끼는 불확실성이 과학 지식의 부족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 가치, 제도, 이해관계의 복합적 문제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셋째, 불확실성 격차(uncertainty discrepancy)는 사람들이 현재 알고 있다고 느끼는 수준과 알고 싶어 하는 수준 사이의 차이를 의미한다. GMO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관련 정보가 너무 기술적이거나, 정부와 기업의 설명을 신뢰하기 어렵거나, 전문가들의 설명이 상충한다고 느낄 때 이 격차는 커진다. 이 경우 공중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불신이 강한 정보 환경에서는 음모론적 설명이나 반과학적 주장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중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현재 지식과 원하는 지식 사이의 차이를 느끼는지 파악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GMO 논쟁에서 불확실성은 크게 두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이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지식의 불확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사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사회적으로 수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합의의 불확실성이다. 특성, 상태, 격차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모두 지식의 불확실성과 사회적 합의의 불확실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영한다. GMO 논쟁이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는 단순히 과학적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식의 불확실성과 사회적 합의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일방적 정보 제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지식과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가치와 우려를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 참여적 소통 과정을 함께 구축할 때 비로소 불확실성으로 인한 갈등을 완화하고 사
회적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신뢰: 과학적 역량은 물론 동기와 의도, 가치까지 고려
또 다른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신뢰의 형성이다. 신뢰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여러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타인과 사회 전반에 대한 일반적 신뢰(general trust)는 사회자본의 형태로 작동하며, 위험 정보를 수용하는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둘째, 정부, 규제기관, 과학기관과 같은 위험 관리 주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는 이들이 공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믿음과 관련된다. 셋째,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충분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신뢰감(confidence)은 기술적 위험 평가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GMO와 같은 논쟁적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이 세 가지 형태의 신뢰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더욱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특히 GMO 논쟁은 단순히 과학적 전문성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많은 공중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기술을 이해하고 평가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GMO 개발과 상업화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기업이나 관련 산업이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다국적 종자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상업적 이해관계는 GM 기술 자체의 안전성 논쟁을 넘어, 기술 개발 주체의 동기에 대한 의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GMO를 둘러싼 갈등은 과학적 역량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위험 관리 주체의 동기와 가치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관련 기관과 기업이 어떠한 가치와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신뢰는 감정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GMO는 흔히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기술로 인식되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프랑켄슈타인 효과(Frankenstein effect)와 같은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유발한다.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과학적 정보의 이해 이전에 형성될 수 있으며, 이후 위험 인식과 신뢰 판단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GMO에 대한 태도는 단순한 정보 부족의 결과라기보다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상징적 의미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신뢰 형성이 어려운 이유 역시 단순히 지식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부정적 정서가 기술과 관련 행위자에 대한 평가에 선행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처음에 GMO를 우리말로 해석할 때 “유전자를 변형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 자체가 부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신뢰의 상실은 GMO 논쟁이 장기화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낙인(stigmatization)의 형성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공중은 과학자들의 전문성 자체보다 GMO 개발과 상업화에 관여하는 기업과 기관의 의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불신은 GMO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결합하면서 기술 자체를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일단 특정 기술이나 제품이 위험하다는 사회적 이미지와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면, 이후 새로운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더라도 부정적 인식이 쉽게 변화하지 않는 낙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GMO는 대표적인 낙인화된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위험 연구에서 낙인은 단순한 인식 차원을 넘어 소비 행태, 정책 결정, 시장 구조에까지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GMO를 둘러싼 갈등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논쟁만이 아니라 신뢰의 상실이 낙인으로 전환되고, 그 낙인이 다시 위험 인식과 불신을 강화하는 순환적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정보의 전달뿐 아니라 신뢰 회복과 낙인 완화를 위한 장기적 소통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신뢰는 위험 인식과 기술 수용을 연결하고 낙인의 위험성을 낮추는 핵심 기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험 관리 주체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위험 인식은 감소하고, 기술 수용성과 정책 순응도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까지 확인된 과학적 사실과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공중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혐오, 의심과 같은 정서적 반응을 완화하고 숙의적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확실성의 유혹을 넘어 ‘참여’의 거버넌스로
이런 GMO와 관련한 쟁점들을 고려하면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불확실성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GMO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에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긍정적으로는 과학적 한계와 남아 있는 쟁점을 솔직하게 설명할 때 과학자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이 완성된 진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체계가 아니라, 증거를 축적하고 수정해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중이 과학적 판단의 조건과 한계를 이해하도록 돕고, GMO에 대한 논의를 찬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더 참여적이고 숙의를 실행하는 논의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당장의 목적 달성보다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면, 이는 전반적으로 과학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사회자본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도 있다. 불확실성의 표현은 공중에게 과학자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GMO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낮은 신뢰 환경에서는 불확실성의 인정이 투명성의 신호가 아니라 책임 회피나 위험 은폐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불확실성이 강조될수록 사람들은 보다 단순하고 확신에 찬 메시지에 끌릴 수 있으며, 이는 극단적 찬반 담론이나 음모론적 설명의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MO 커뮤니케이션에서 불확실성을 감추거나 축소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제거된 것처럼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단기적으로는 공중의 불안을 낮출 수 있지만, 이후 새로운 연구 결과나 논쟁이 등장했을 때 더 큰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단순히 강조하는 것도, 회피하는 것도 아니라, 불확실성의 종류와 범위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무엇이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는지, 무엇이 아직 논쟁적인지, 어떤 조건에서 위험이 달라질 수 있는지, 어떤 제도적 장치가 위험을 관리하는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확실성을 가장하는 설득 전략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공적으로 다루며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GMO의 안전성을 주장하거나 위험성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GMO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절차적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다. 공중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위험이 없다는 단정이 아니라, 어떤 위험이 어떠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평가되고 있으며, 남아 있는 불확실성은 어떤 절차와 제도를 통해 관리되고 있는가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다. 또한 규제기관, 과학자, 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어떠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공중이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결국 GMO를 둘러싼 신뢰는 개별 행위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 평가와 의사결정 과정 전체가 공정하고 책임 있게 운영된다는 절차적 신뢰 위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논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과학적 신뢰와 민주적 참여를 증진하고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GMO 논쟁은 가치 갈등(value conflict)의 문제를 포함한다. GMO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안전한가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식량 생산과 유전자 자원의 통제권은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가, 기술 혁신과 예방 원칙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 판단을 포함한다. 이러한 쟁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위험의 크기를 추정하거나 안전성을 평가할 수는 있지만, 무엇이 바람직한 사회적 선택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가치 갈등은 과학적 증거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 구성원 간의 숙의와 협의를 필요로 한다.
현대 위험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위험 문제를 더 이상 전문가가 정보를 전달하고 공중이 이를 수용하는 일방향적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통해 논의되고 조정되어야 하는 공적 의제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GMO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GMO를 둘러싼 갈등은 정부, 과학자, 기업, 환경단체, 소비자단체, 농업 생산자,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참여하는 사회적 논쟁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목표 역시 공중을 설득하거나 특정 입장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관점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조정될 수 있는 숙의적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위험 거버넌스 연구에서는 이해관계자 참여(stakeholder engagement)와 숙의적 의사결정(deliberative decision making)을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민배심원제(citizen jury),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이해관계자 협의체(stakeholder forum)와 같은 방식들은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위험 정보를 검토하고 다양한 가치와 우려를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숙의 과정은 기술적 전문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규제와 의사결정 구조의 분절성, 전문가 중심 문화, 제도적 관성 등 다양한 장벽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참여의 확대 자체가 곧바로 효과적인 위험 거버넌스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시민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필요한 정보를 논의하며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동일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위험 이슈에서는 완전한 합의 자체가 반드시 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따라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충분히 표현되고 검토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구축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활동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숙의와 정당성 형성의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나가며: 누가 옳은가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한 ‘느린 숙의’의 힘
결국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첫째, 현재까지 확인된 과학적 지식과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위험 평가와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고 책임 있게 운영된다는 절차적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규제기관, 과학자, 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셋째, GMO를 둘러싼 상이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숙의적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GMO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과제는 공중을 설득하여 특정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절차적 신뢰를 구축하며, 가치 갈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참여적 소통 구조를 형성하는 데 있다.
결국 GMO 논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더 이상 지식의 전달이나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는 특정한 입장을 승리하게 만들거나 상대방을 설득하여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서로 다른 지식, 가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는 숙의의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과학적 사실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느린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신뢰를 형성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빠른 설득이 아니라 느린 숙의에 있다.
과학자들 역시 이러한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은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과학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과학은 절대적 확실성을 제공하는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증거를 축적하고 기존의 설명을 수정해 나가는 잠정적 지식의 과정이다. 동시에 인간 사회는 사실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 신념, 경험, 문화적 배경을 함께 반영한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 위에 사회적 가치가 덧붙여지는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GMO를 비롯한 현대의 위험 이슈는 과학과 사회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설득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지식과 인식, 확실성과 불확실성, 효율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점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그 균형점을 모색하는 사회적 실천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당한 절차와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느려 보이는 길이 가장 빠르게 사회적 신뢰와 합의에 도달하는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