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생명공학 리포트 ②
GMO 갈등과 ‘시민과학(Citizen Science)’
글 고선아 대표(길물빛콘텐츠연구소, 前 동아사이언스 콘텐츠본부장)
기후변화, 팬데믹, 환경오염, 에너지 문제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공공의 문제들은 공통점이 있다. 적절한 해결책을 두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향을 주는 요인과 이해관계가 복잡하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오늘날 공공정책 관련한 문제를 ‘사악하다’고까지 표현한다. 단순히 과학적 지식이나 정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는 것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GMO)를 둘러싼 갈등도 이런 ‘난제’ 중 하나다. 올해로 미국에서 세계 최초 GM 토마토가 나온 지 30년이 됐지만, GMO를 둘러싼 갈등과 논쟁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 : 현대의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유전물질을 갖게 된 식물, 동물, 미생물을 뜻한다. ‘LMO(Living Modified Organisms)’ 또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라고도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말해도 못 믿는 GMO
최근 정부에서는 올해 12월부터 유전자변형 식품에서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GM 농수산물로 식품을 만들 경우, 제조와 가공 후 유전자변형 성분이 남아 있을 때만 GMO 표시를 했다. 하지만 GMO 완전표시 제가 시행되면 제조와 가공 후 변형된 유전자가 남아 있지 않아도 GMO 표시를 해야 한다. 우선 간장, 대두유(콩기름), 물
엿 등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이 보장되고, GM 식품 유통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생산되는 Non-GM 식품 수요가 늘어날 거라는 기대도 있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지나친 관리로 비용이 늘고, GMO에 대한 불안만 높아질 거라고 걱정한다. 인체와 환경에 대한 GMO의 위해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과학원(NAS)등 세계 주요 기관들도 안전성 평가를 통과해 유통되는 GM 식품은 건강에 위협을 줄 가능성이 낮다고 밝히고 있다. GM 식품이 일반 식품보다 건강에 해롭다는 증거도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꾸준히 GMO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우려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2016년에는 1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국제구호단체인 그린피스에서는 GM 작물인 황금쌀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를 과학자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황금쌀은 유전자변형을 통해 일반 쌀과 달리 베타카로틴 성분이 많이 들어있도록 개발됐다. 베타카로틴은 인체에서 비타민A로 전환되기 때문에 비타민A 결핍증(VAD)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타민A 결핍이 심각하면 실명은 물론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노벨상 수상자들은 성명서에서 전세계에서 VAD로 고통받는 사람은 약 2억 5,000만 명으로, 이중 약 40%가 5살 이하 어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과학이 아닌 감정에 기반한 그린피스의 GMO 반대 운동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GMO 반대 운동이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뺏는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이 성명을 담은 웹페이지는 지금도 열려 있으며, 현재 노벨상 수상자 183명과 일반 시민 1만 3719명이 지지 명단에 올라 있다. 이후 황금쌀은 2018년 캐나다, 호주, 미국 등에서 식용으로 승인됐다.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등 동남아 일부 국가들도 승인했지만,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는 모양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2022년 정부가 황금쌀 재배를 승인했지만, 2024년 법원에서 이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린피스와 다른 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법원이 황금쌀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없는 한 상업적 재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전세계에서 시민과학을 주목하는 이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한쪽은 위해성을, 다른 쪽은 안전성을 입증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복적인 상황은 GMO를 둘러싼 갈등이 과학적인 사실과 정보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사악한’ 난제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과학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광범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GMO를 포함한 까다로운 공공정책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중요한 해법 중 하나로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을 주목하고 있다. 시민과학은 일반 시민들이 과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배운 뒤, 직접 데이터를 모으거나 분석해 연구에 기여하는 활동을 말한다. 정해진 방법대로 데이터를 모으는 모니터링부터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제안해 과학자와 함께 실행하는 단계로 심화된다.
우리나라에 시민과학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갤럭시 주(Galaxy zoo)’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영국의 한 천문학자는 웹사이트에 7만 장의 천체 사진을 공개하고 일반 시민들이 분석에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연구진은 사진 분석에 필요한 시간이 몇 년은 될 거라 예상했지만, 첫해 동안에만 15만 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무려 5000만 장 이상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한 교사가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2009년부터는 ‘주니버스(Zooniverse)’라는 시민과학 플랫폼으로 확장되었다. 주니버스에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지금도 7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재미’와 이를 통해 과학 연구에 기여하는 ‘보람’은 시민과학의 강력한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과학자와 지역사회,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일반 시민이 문제를 발굴하고 제안할 수 있는 열린 구조도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시민과학이 확장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 예로 미국항공우주국(NASA)는 ‘나사앳홈(NASA@home)’이라는 사이트를 구축해 누구나 집에서 나사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개기일식 관측 중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태양계 9번째 행성이 될 수 있는 75개의 갈색왜성을 찾아내기도 했다. 목성 사진을 분석하고 오로라와 개기일식을 기록하는 등 지금도 상시 4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사태 때는 빠르게 확산 정보를 구축하는 게 필요했는데, 이때 시민과학이 큰 도움이 됐다. 한 예로 당시 보스턴 아동병원과 하버드대학교 등의 연구자와 자원봉사자들은 북미지역의 감염 정보를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아웃브레이크니어미(Outbreaks Near Me)’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근처의 실시간 감염자 정보를 받아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이 감염되면 그 상황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이 사이트는 2020년 12월부터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독감까지 기록하고 추적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장되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 다양한 시민과학 사례들. 맨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사앳홈, 아웃브레이크니어미, 샤워도우 프로젝트, 배추흰나비 프로젝트, 폴드잇, 아이와이어. 이미지/각 웹페이지 갈무리
이제 시민과학은 일일이 다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농업과 식품 분야에서도 해충인 배추흰나비 경로를 추적하고, 시민과학자들이 모아준 빵 발효 미생물을 분석하기도 한다. 환경 분야에서는 멸종위기종의 서식 여부를 확인하고 도시의 화분매개자 서식 경로를 조사해 단절된 곳을 찾아낸다. 게임하듯 참여할 수 있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도 있다. 단백질의 기능과 구조를 게임하듯 찾는 ‘폴드잇(Foldit)’, 두뇌에 있는 망막 신경세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내는 ‘아이와이어(Eyewire)’ 등이 대표적이다.
2025년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각 나라 정부가 제도적으로 시민과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시민 참여를 통해 과학적 발견과 데이터가 확장되고, 시민의 지식과 경험이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시민 참여로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면 민주적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시민과학을 연구정책에 제도적으로 반영하도록 권고안도 제시했다. 경제 성장과 안정을 목표로 하는 OECD에서도 시민과학을 가치 있는 정책도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민과학으로 과학자본 쌓는다
실제로 시민과학 활동을 해 보면 장점이 많다. 우선 과학적인 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사고와 언어를 익히게 된다. 또한 지역사회는 물론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기회도 열린다. 온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많아서 여가 활용 측면에서도 매우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이때 공공정책과 관련한 주제는 직접 조사하며 들여다보게 되니 그만큼 관심과 이해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매미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 시민과학 현장의 모습. 사진제공/고선아
2023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시민과학컨퍼런스에 참여해 13년 가까이 이끈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필자의 모습. 유럽, 미국, 호주 등에서는 주기적으로 시민과학 컨퍼런스가 열린다. 사진제공/고선아
최근 자주 들리는 ‘과학자본(Science Capital)’도 시민과학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과학자본은 개인이 과학기술에 가지는 지식과 태도, 환경과 경험 등의 총합을 뜻하는 말이다.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 활동과 경험, 과학자와의 교류 등이 있어야 과학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본다. 과학문화를 사회문화적 자본으로 이해하는 개념으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경험할수록 과학자본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지식보다 과학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과학자본을 쌓는 활동으로 시민과학만 한 게 또 있을까?
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러한 시민과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오래 전부터 활성화에 나섰다. 미국은 2015년 크라우드 소싱 및 시민과학법을 만들고 정부에서 시민과학 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다. 유럽도 영국과 독일 등 각 나라별로 시민과학이 활성화 되어 있고, 2021년에는 유럽연합 주도의 시민과학 중앙 플랫폼(eu-citizen.science)도 문을 열었다. 유럽, 미국, 호주에서는 각 대륙별 시민과학협회를 중심으로 국제 컨퍼런스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민과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공공기관이나 민간 영역에서 시민과학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 연구나 정책으로 연결되는 사례는 드물다. 또한 시민과학 단체끼리 서로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함께 논의할 마땅한 거점도 없다. 영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은 한계가 명확하고, 공공에선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GMO 갈등은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과학기술 갈등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식과 정보만으로는 이런 갈등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참여’로 연결되는 시민과학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