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생명공학 리포트 ③
합성생물학, 생명체 설계 시대를 열다
글 고선아 대표(길물빛콘텐츠연구소, 前 동아사이언스 콘텐츠본부장)
“생명공학에서 가장 야심차고 매력적인 목표 중 하나는 화학으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생화학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올해 7월 2일 미국 미네소타 연구팀은 이렇게 시작하는 인공 합성세포 ‘스퍼드셀(SpudCell)’에 대한 논문 초안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아직 정식으로 동료 평가를 거친 논문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분열해 번식하는 인공 세포는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극히 초기 단계라는 의견이 많지만,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공학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활용하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스퍼드셀(SpudCell)’의 탄생
합성생물학은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공학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활용하는 분야다. 유전자를 조립하고 설계해 원하는 기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접근 방식에 따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나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바텀업(Bottom-up)’ 분야와,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체를 편집, 제어, 재설계하는 ‘탑다운(Top_down)’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마치 반도체를 조립해 원하는 기능을 가진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듯, 생물학적 기능을 표준화해서 원하는 생명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이에 질병의 진단과 치료, 예방을 포함한 의약품과 의료 기술은 물론 농업과 식품 영역의 생물자원 개발, 산업과 에너지 관련한 소재와 연료 등 미래 바이오 산업을 이끄는 중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스퍼드셀(SpudCell)은 생체분자를 하나씩 조립하는 방식(Bottom-up)으로 만들어졌다. 지방 막으로 둘러싼 배양액에 DNA 복제 등을 담당하는 필수 유전자 36개가 들어 있는 형태로, 일반 세균의 약 50분의 1 정도 크기다. 연구팀은 DNA, 단백질, 리보솜 등 생명 활동에 필요한 분자들을 이용해 스퍼드셀이 성장과 분열, 유전체 복제를 하도록 인공적으로 설계했다. 그 결과 스퍼드셀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 유전자를 복제하고, 세대를 거치며 분열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스퍼드셀이 기존의 생명체를 축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물질을 조립해 화학 시스템을 설계해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시스템이 완전한 세포 주기를 구현해 낸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퍼드셀이 아직은 비효율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차례 세포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스퍼드셀을 기계적으로 분리해야 했고, 다섯 번의 분열 주기 이후에는 완전한 유전체를 가진 스퍼드셀이 3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퍼드셀은 단백질을 만드는 핵심 장치인 리보솜을 스스로 만들거나 오래 된 리보솜을 제거하는 기능도 없다. 연구를 이끈 미네소타 대학교 케이트 아다말라 교수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퍼드셀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명확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연구가 초기 단계의 인공세포 연구 결과지만 세포의 성장, 복제, 분열의 연속 과정을 구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아직 동료들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확대해서 해석하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논문은 현재 학술지가 아니라 아다말라 교수가 공동으로 설립한 공익 연구기관인 바이오틱(Biotic) 플랫폼을 통해 공개돼 있다.
유전 정보 해독에서 인공 생명체 설계로
사실 인류는 오랫동안 유전자를 ‘해독’해 생명 현상의 원리를 밝혀 왔다. 1950년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며 유전 정보를 읽는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유전 정보가 DNA에 어떻게 저장되고 복제되는지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합성 메커니즘, 생명 활동의 조절 원리 등이 규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게놈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DNA에 있는 30억 개 염기쌍을 모두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1990년대 시작되었다. 이후 2003년에 약 92% 정도를, 이어 2023년까지 나머지 8%를 모두 해독해 내며 공식적으로 종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생명 현상과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정밀의학과 개인 맞춤형 치료 연구도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유전자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 탐구는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연구로 확장되었다. 최초의 인공 생명체는 정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2010년 미국의 크레이크 벤터 박사팀이 개발한 JCVI-syn1.0이 주로 이야기된다. 벤터 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 2000년 6월 인간 유전체 초안을 전세계에 공동으로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의 유전체에 관심을 갖고 박테리아를 연구해, 2010년 드디어 유전자 901개와 염기쌍 107만 7947개를 가진 박테리아 ‘JCVI-syn1.0’을 합성하는 데 성공한다. 컴퓨터로 설계한 유전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고 세포에 이식해 스스로 분열하고 증식하는 생명체를 최초로 구현해 낸 것이다.
이후 벤터 박사는 최소한의 유전체를 가진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갔고, 2016년 ‘JCVI-syn3.0’을 합성하는 데 성공한다. JCVI-syn3.0은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의 염기를 인공적으로 조합해 만든 인공 생명체로, 유전자 473개와 염기쌍 53만 1,000개를 갖고 있다. 이 연구결과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최소 유전자만 갖추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자손 세대에서 형태와 크기가 고르지 않다는 점은 한계였다. 벤터 박사팀은 이후 지속적으로 연구를 이어가 2021년에는 스스로 성장한 뒤 균일하게 분열하는 인공생명체 ‘JCVI-syn3A’를 합성하는 데 성공한다. 자손 세포의 크기와 형태, 유전자 구성이 모세포와 일치한 것이다. 이에 JCVI-syn3A는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손까지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공 생명체에 한층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터 박사팀의 연구는 불필요한 유전자를 제거해 최소 유전체를 만드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다. 이에 세포막과 리보솜, 단백질 합성 장치 등 세포의 기본 구조와 기능은 기존 세포에서 가져와 활용했다. 반면 앞서 이야기한 스퍼드셀은 지질막과 DNA 등 생명의 구성 요소를 아래에서부터 하나씩 조립해 세포를 만들었다(Bottom-up). 이러한 연구들은 합성생물학이 생명의 최소 조건을 밝히는 것에서 출발해 새로운 생명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은 합성생물학 시대
합성생물학에 인공 생명체 연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의 유전자를 바꾸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넣어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러한 기술이 산업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1982년 출시된 인슐린 치료제 ‘휴물린(Humulin)’이다. 당뇨병은 혈액 속 포도당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만성질환으로,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작용하지 못해서 생긴다. 그래서 과거에는 주로 돼지와 소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얻어 투여하는 방식으로 당뇨병 치료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공급량에 한계가 있었고, 불순물과 면역 반응은 물론 가축을 도살하는 윤리적 고민 등 문제가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휴물린이다. 유전자변형기술로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해 대장균이 사람 인슐린을 생산하도록 만든 것이다. 휴물린의 등장으로 사람과 동일한 구조의 인슐린을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당뇨병 치료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외에도 환자의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재설계하는 혈액암 치료제 CAR-T, 코로나 사태 때 활약한 모더나의 mRNA 백신은 물론 고기를 대체하는 배양육 등도 합성생물학의 결과다. 이처럼 합성생물학은 이미 의료와 신약, 농업과 화학, 에너지 등 우리 가까이에서 그 역할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정밀한 유전자편집기술과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합성생물학이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 이에 경제개발기구(OECD)는 2025년 11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과 인공지능(AI), 자동화(Automation)의 융합이 바이오 연구개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OECD는 이를 ‘SynBioxAI‘라는 용어로 표현하며, 생명공학 연구와 산업의 근간을 바꾸는 새로운 혁신 체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방대한 생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최적의 대사경로를 예측해 실험의 성공 가능성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는 이런 설계를 바탕으로 DNA 합성, 세포 배양, 분석 등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실험 결과는 다시 인공지능의 학습에 쓰여 다음 연구를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술적 융합은 의료와 농업, 화학과 환경 등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합성생물학의 시장 규모도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컨설팅 기업 퓨처마켓(Future Markets)은 2025년 보고서를 통해 전세계 합성생물학 시장이 2026년 323억 달러(약 45조 원)에서 2036년 2,575억 달러(약 36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 : 유전자와 세포를 설계하고 제작·검증하는 등 합성생물학의 연구개발 과정을 자동화한 첨단연구시설.
합성생물학, 기술혁신과 사회적 신뢰 함께 확보해야
우리나라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합성생물학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026년 4월 합성생물학 육성법 시행을 발표했다. 2023년 12월에 합성생물학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한 데 이어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앞으로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시행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국내외 기술과 산업, 정책 등 현황 조사와 평가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정책수립과 시행 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다. 산학연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합성생물학 거점 기관도 지정해 지원하고,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도 구축해 운영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법안에는 합성생물학이 가져올 위험과 악영향, 윤리적 문제 등을 예방하기 위해 연구 지침과 안전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합성생물학이 의료와 농업, 환경 등 바이오 산업 전반에 혁신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그만큼 안전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OECD도 앞선 보고서에서 SynBioxAI 기술이 잠재력과 국가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연구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지만, 생물안보와 바이오 테러에 대한 위험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동시에 오용을 막기 위해 정책 입안자와 국제사회가 함께 다루어야 할 주요 의제 7가지를 제시했다. 혁신 친화적인 규제, 생물 안보와 안전, 데이터 공급망, 지역 격차 해소, 인간의 감독, 기술 주권, 연구 보안이 그것이다.
한편 2024년 3월에는 과학자들의 ‘책임감 있는 AI X 바이오디자인(Responsible AI x Biodesign)’이라는 성명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 해악을 초래하거나 기술의 오용을 불러올 수 있는 연구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성명서였다. 이를 위해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이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성명서에는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를 포함해 현재 전세계 과학자 189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합성생물학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분명한 건 합성생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이점을 잠재적 위험보다 훨씬 크게 만들려면 연구자와 정부, 산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합성생물학 육성법이 기술의 속도뿐만 아니라 안전과 신뢰라는 방향성도 함께 고민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