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개량을 연구하는
유전자교정연구센터 손혜진 연구원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는 다양한 연구실과 센터가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유전자교정연구센터에서 유전자가위 개량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손혜진 연구원을 만나 물리학도 출신인 그가 느낀 생명공학의 매력과 연구원 생활, 현재 연구중인 CRISPR 유전자가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소 유전자교정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손혜진입니다. 유전자교정을 가능케 하는 CRISPR 유전자가위 개량 및 발굴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생명공학연구원 내에서도 그 이력이 무척 특이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력일까요?
(웃음) 사실 저는 제가 여기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는 학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모두 물리학과에서 마쳤습니다. 물리학과 안에서 생물물리를 공부하긴 했습니다. 우연치 않게 유전자가위 분야를 연구하면서 제가 공부한 실험 기법들이 유전자가위 연구 분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히 도전하게 됐습니다.
놀랍네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던 건가요?
네. 학부 시절 교과서를 사러 교내 갔을 때 3판 내외의 개정판인 물리학 교과서와는 달리 생물학과 친구의 교과서는 7판, 10판, 매년 새로운 개정판이 나오더라고요. 도대체 뭐가 새롭게 업데이트가 되길래 계속 개정판이 나올까, 이 학문은 도대체 왜 계속 변화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습니다.
물리와 생물, 잘 연결이 되지는 않네요.
물리하시는 분 중에 생물 싫어하는 분, 많으세요.(웃음) 그 반대도 그렇고요. 한창 생물학에 관심이 생겼을 때는 두 학문 간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이 두 분야가 접목이 잘 안되는지를 생각해보니 전문적인 용어나 관점, 질문에 대한 종류들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역사적으로 본다면 현대 생물의 폭발적인 발전은 DNA구조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미국은 DNA 이중나선구조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4월 25일을 DNA day로 기념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DNA를 구조를 밝힌 과학자 중 한 명인 크릭이 물리학자였습니다.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물 연구에 뛰어들었는데요, 크릭을 포함한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책이 바로 양자역학 연구자로 알려진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후 왓슨과 크릭이 DNA구조를 밝혀내면서 현대 생물학의 많은 업적이 비로소 시작이 된 거죠. 이런 점에서 저는 학문간의 소통, 교류가 위대한 발견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원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모든 물리학도가 그렇듯, 저도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과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처럼 세상의 근본을 밝히는 것에 매료됐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서 물리는 이미 학문적으로 매우 성숙한 단계라는 생각이 꾸준히 들었습니다. 평소 과학은 자세한 지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 왔는데요.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 이 눈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를 생각해서 물리를 선택했는데 연구를 하다 보니 물리학의 눈으로 생물을 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됐고, 물리학과 학생이 생물학을 복수전공을 하는 모험을 감행하게 됐습니다.
전공을 바꿀 때, 주변의 반대가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전공을 바꾼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웃음) 사실 전공을 바꿨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물리를 하되 생물 물리를 계속 해 왔고, 저 스스로가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생물을 바라본다는 가치관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저는 크게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생물학은 어떠셨나요?
학부 때 배운 동일한 과목의 내용이 몇 년 후 대학원에서는 새로운 내용으로 담겨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학부 때 배운 내용은 가설이었는데, 몇 년 뒤 대학원에서 같은 내용을 배울 때는 정설이 되어 있는 식이죠. 그게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물리학과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논문을 볼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취된, 정립된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생명과학 수업에서는 학부생들에게 논문을 읽게 하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만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매우 매력적인 학문으로 느껴졌겠군요. 생명공학연구원은 박사 과정 후 바로 입사하신 건가요?
생명공학연구원으로 다음 진로를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닙니다. 석, 박사 통합과정을 마치고 포스닥(박사후연구원)기간을 5년 가졌어요. 사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박사과정 이후 직장을 구하는 것은 학부 졸업 후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요. 박사는 모든 것을 알기 보다는, 한 분야를 매우 첨예하게 연구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세분화된 분야에 맞는 채용이 있어야 직장을 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침,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제가 바라던 유전자가위 분야에 대한 공고가 났고, 그동안 이곳이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냈었고,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해 도전하게 됐습니다.
생명공학 중 유전자교정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리학도 시절에 핵산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연구했습니다. 이 유전자가위가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를 보고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함께 들어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연구하고 계신 유전자가위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바람은 생전에 제가 개발한 유전자가위가 실제 유전병 치료에 사용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많은 R&D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가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것을 직접 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기초 과학 분야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빠르게 발전 중입니다. 연구는 힘들지만 꾸준한 노력이 더해진다면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쉽게 자랑을 좀 해주세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고, 가격이 다른 유전자가위 기술에 비해 저렴합니다. 이전 유전자가위는 단백질을 바꿔야 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었어요. 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핵산, 정확히는 RNA를 바꾸면 목표 유전자를 쉽게 바꿀 수 있어요. RNA를 바꾸는 이 기술은 단백질을 바꾸는 기술에 비해 쉽고 빠른 데다 가격이 저렴해서 빠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참 멋진 일인데요, 어려운 일인만큼 일반인들은 이해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비전공자의 주변인들에게 본인의 일을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유전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유전자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가위가 보다 쓸모 있도록 개량하는 연구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전자가위를 실제 유전 질병 치료에 활용하려면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효율적이어야 질병 치료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정확해야 부작용이 거의 없는 치료법이 될 테니까요.
생명공학에 대한 우려의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자, 전문가들의 “잘 모르면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라”는 식의 태도는 우선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내가 하고 있는 연구, 내가 개발한 기술이 그 법적인 테두리 안에 들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연구와 일을 일반인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모른다고 비난할 문제가 아니에요. 충분히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 기술이나 결과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일반인, 우리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전문가는 이를 설득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곳은 국민의 세금으로 R&D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연구는 국민의 몫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과물에 대한 설명의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 입사 후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입사 후 바로 다리 부상을 입어서 거동이 매우 불편했어요. 일반 회사였다면 퇴사를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그런 걱정없이 건강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건 특수한 상황이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세요. 특히 센터장님께서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잘 해주시고, 행정적으로도 지원을 잘 해주세요. 그리고 생물이란 분야는 기계가 많이 필요한 편이에요. 공동장비를 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원은 인프라가 많이 갖춰져 있어서 당장 필요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시설에 대한 고민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메리트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인프라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큰 강점인가보네요.
현대 연구는 좋은 장비가 연구 결과를 내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장비가 고가이기 때문에 작은 연구실에서는 그걸 갖추기가 쉽지 않아요. 여기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비들이 있고, 이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시설적, 인력적으로 잘 갖춰져 있는 편이에요. 물론 앞으로도 새로운 장비를 꾸준히 구축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이외에도 지척에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과 비교해 한 조직에 많은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안에서 관련 전문가를 찾고자 한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연구원 생활에 아쉬운 점이 있을까요?
<바이오세이프티> 웹진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단점을 말하기 쉽진 않은데, (웃음) 단점은 아니고 이곳은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했다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만큼 미션, 목표에 맞는 연구를 중요시하죠. 처음에는 연구 조직 특유의 자율성과 정출연의 목적성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떤 가이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균형은 스스로가 맞춰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건데, 익숙해지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희 센터장님께서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시고 원하는 연구를 통한 성과를 독려해주시는 분이세요. 목적과 성과를 고려할 때, 자율성 존중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곳의 운영안이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어떤 상황이든 이를 잘 이겨내고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니까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폭 넓은 경험을 쌓아 보기를 추천합니다. 내가 생명공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그것만 고집하기 보다는 시야를 넓게 보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의 인턴제도, 짧게 연구원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짧게 라도 연구원 생활을 해본다면 연구원의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연구원 내에서 운영 중인 대학원에 지원한다면 연구원과 관련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만약 학생이 아닌 상황이라면 꾸준히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인지 살피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곳은 목표가 있는 조직이고, 그에 맞는 사람을 뽑기 마련인데요. 내가 거기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조사와 연구, 공부가 필요하겠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단기적인 목표는 원천 기술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소박하더라도 정말 유용한 특허를 내보고 싶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분야가 특허 분쟁이 심한 분야인 만큼 고유 기술, 원천 기술을 갖기 어려운데 정말 쓸 모 있는, 원천 기술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제로 제가 만든 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기술 개발 이후에도, 임상의 단계를 거쳐야 실용화가 가능한데 그 임상을 통과하기 까지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려요. 물리를 할 때 가장 큰 고민은 내 연구가 인류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장기적인 학문이라 길게 봐야 한다고 늘 생각했어요. 생명공학 분야에 뛰어든 뒤로는 경쟁은 치열하지만 내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가 눈앞에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긴 노력과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꼭 제 노력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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