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
유전자변형생물체
규제를 보는 시각


글. 전방욱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01 서로 다른 관점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어떤 사람들은 안전성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나 이 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변형생물체가 인간이 섭취해도 안전하고 작물의 생산량을 증대시키고 해충과 질병에 저항력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전자변형생물체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기존에 개발된 우량 형질을 갖는 유전자변형생물체가 소비자에 의해 채택되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되는 현상을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가 무엇이고, 이 기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일반 시민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른바 대중이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제대로 이해(Public understanding)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과학적 증거를 제대로 알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이익에 관한 교육의 주체가 되고 시민들은 피교육자가 되는 일방적인 교육이 실행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미디어와 대중적 포럼을 통한 대중 교육, 유전자변형생물체 제품 표시, 비-유전자변형생물체 인증프로그램, 유전자변형생물체 홍보 캠페인, 독립적 연구지원 등을 통해 시민들이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해서 스스로 인식(Public awareness)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유튜브 등을 사용하여 잠재적인 위험성과 이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구입하는 식품에 라벨링하는 것을 법률로 규정하며, 비-유전자변형생물체 제품을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소셜미디어·대중 행사·기타 플랫폼을 사용하여 유전자변형생물체와 그들의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과 홍보의 과정에서 생명공학자, 특정하여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시민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과학자들은 소비자를 일방적으로 교육시키고, 정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의사가 강하다. 최근 임의로 채택한 전문가 좌담회의 사례에서 시민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단어들인 ‘비과학적’ ‘꺼림직한’ ‘막연한’ ‘답답한’ ‘잘 모르는’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논의의 과정에서 시민을 무시하고 있다는 정황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스스로 생명공학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자부한다. 역사적으로는 1975년의 아실로마 회의, 2015년의 인간 유전자 편집 국제 정상회의 등으로 뒷받침되는 사례가 있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과학계가 신기술을 개발 및 적용하는 원칙을 어떻게 개발하려 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자기 규제 방식이다. 재조합 DNA에 대한 실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 전파력과 독성을 증가시키도록 조작하는 것과 독성을 증가시키도록 조작하는 것과 같은 기능 획득 돌연변이 실험,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임상 적용, 유전자 드라이브의 생태계 방출 등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을 천명하였으나 과학자들 스스로 의제를 제한하고 연구를 최대한 지속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받은 경우가 많다. 흥미롭게도 어떤 자발적인 자기 규제 방식은 정부에 의해 채택되기도 한다.


02 과학, 과학 정책 그리고 정책의 문제 


과학을 포함하는 정책 결정을 과학의 문제, 과학 정책 문제 그리고 정책 문제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편리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기초 유전학과 같은 과학의 문제는 관심을 갖는 시민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주로 과학공동체 내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과학자 사이에서도 과학적 사실에 대한 입장은 다를 수 있다. DNA 재조합 기술의 도입 당시 유전자와 그 산물에 대한 개념은 단선적이었다. 각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별개로 분리되고 연구될 수 있는 유전정보의 단위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맥락에서 이 개념은 단일 유전자를 변형시켜 생물체의 원하는 형질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설명됐다. 예를 들어 유전자변형생물체는 특정한 해충이나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나타내는 단백질과 같은 특정한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단일 유전자를 변형하여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경우에 이 단일 유전자는 유전적 변형의 표적이며 원하는 형질은 그 유전자의 기능을 변화시켜 만들어졌다.


개별 유전자의 개념은 유전학 연구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개발에 주요한 개념이었다. 개별 유전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연구자들은 생물체에서 변형되는 방식으로 다른 유전자들의 특이적인 기능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에 최근 유전체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의 상호연결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유전자의 상호연결성은 유전자가 정보의 고립된 단위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생각을 알려준다. 이것은 유전자의 기능이 그 자신의 서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다른 유전자의 존재와 기능에 의하여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유전자의 발현이 다른 유전자의 발현에 의해서 조절되는 유전적 조절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서 일어난다.


유전자의 상호연결성은 생물학적 저변의 복잡한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개발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유전자의 상호연결성을 고려함으로써 연구자들은 유전자변형생물체 예상하지 못한 알레르기나 독소의 생산을 막을 수 있고 더욱 효과적인 개발법을 강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복잡한 유전자의 상호연결성을 다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상존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 기술 개발의 이익/위험성 분석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데이터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과학적인 문제이지만,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을 갖는 과학자와 타 분야 전문가, 시민 사이에서 데이터의 상대적 중요성은 다르게 평가될 것이기 때문에 과학 정책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기술적 낙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며 유전자변형생물체가 농업과 식량 생산을 혁신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관점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잠재적 이익은 잠재적 위험성을 능가하며, 우리는 증가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유전공학을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유전자변형생물체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이나 시민들은 기술적 회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잠재적 위협이 잠재적 이익을 능가한다고 믿는다. 이 관점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체가 자연계에 대한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입으로 간주되며 우리들은 이것을 사용하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에코페미니스트와 같은 근본적인 생태론자들은 농업에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사용이 자연에 대한 통제와 지배의 가부장적 체계를 강화시키고 따라서 여성과 다른 소수집단을 억압하고 착취한다고 본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개발과 사용이 종종 기업, 또는 기업과 밀접하게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과학자에 의해서 추진되며 이들은 사람과 환경의 복지보다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간주한다. 유기농과 같은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농법이 여성과 다른 소외집단을 더 포용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농법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지속적 개발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 입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된다. 유전자변형생물체 기술의 적용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규제를 가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정책의 문제이다. 이 경우에 이익/위험성 분석은 최종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기보다 어떤 정책 결정이 이성적으로 근거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03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과학 정책의 문제는 찬반 양쪽의 대표자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과학자와 다른 전문가의 상호토론을 거쳐서 여론의 법정에서 결정된다. 증거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는 대체 가설과 검정에 의해 얻어지는 실험실의 증거라기보다는 반대 심문되는 증인에 의해서 평가되는 법정의 증거와 비슷하다. 잘못된 정보는 공공 정책 토론에서 치명적인 위험 요소이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정보를 밝히고, 그 결함을 제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공청회가 자주 열리며, 증거는 어떤 논쟁의 모든 참여자에게 개방되는데, 이것은 정말 최소한 반대 측이 데이터나 이론적 설명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유전자변형생물체와 같은 신기술에 의해 제기되는 문화적, 종교적, 이념적 논쟁을 분석하는 데에는 윤리, 법, 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들의 전문적인 조언은 의사결정 과정과 합의점 구축에 기여한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함하는 과학적 자기 규제의 이런 방식을 자기 규제 플러스라고 부른다. 과학적인 ‘자기 규제 플러스’ 틀 안에서 여러 학술 공동체가 포함된 합의점 구축 과정은 초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지침을 개발하는 데 관여한다.


과학자들이 시민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시민이 신뢰하는 한, 과학계의 자기 규제 플러스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우선 과학자들과 다른 전문가들의 합의 형성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이 과정은 공개되어야 한다. 또 시민은 공개 토론을 통해 과학자들 및 전문가들의 합의 형성 과정에 대해 반응과 우려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회, 공청회, 공론조사, 미디어와 인터넷 등을 통해 시민과 과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의사를 상호 교환해야 한다. 투명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과학의 상용화가 점점 더 많은 이해 상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버그가 강조했듯이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들은 1970년대와는 달리 사기업에 종사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자기 규제 방식이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대중에게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음의 네 가지 이유로 과학자와 일부 전문가들만이 참여하는 과학적 자기 규제 플러스는 신생명공학기술을 충분히 통제할 수 없다.


우선 시민이 이 논의에서 그 결정사항에 대해 대의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과학자들과 다른 전문가 집단의 의견만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민주적인 정당성이 결여된다. 둘째, 전문가 단체의 결정이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가치나 원리를 무시할 것이라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 셋째, 규제 제도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확신은 적절한 규제를 통한 신기술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넷째, 시민은 ‘자기 규제 플러스’를 통한 최소한의 합의를 불충분한 타협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정책의 문제는 누가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 민주정부에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이나 정부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과학자, 언론, 소비자 단체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지난 7월, 시민사회의 재검토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국회에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을 정부입법안으로 제출한 것은 공공정책 결정에 있어서 시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저버린 사안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과학 정책과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과학자가 주도할 수는 없다. 과학자와 시민은 유전자변형생물체를 두고 철학적 입장을 서로 달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로의 철학을 존중하지 않는 한 과학적인 문제의 해결은 어렵다.


시민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 문제처럼 여러 가지 많은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가 게재된다면, 시민은 이런 기술이 어떻게 규제되고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발언권과 이를 결정할 주권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의 자기 규제와 전문가의 자기 규제 플러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민 참여 방식이 구현될 때 과학기술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또 다른 장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Charo, R. A. & Hynes, R. O. 2017. Evolving policy with Science. Science 355(6328), 889.

Minkoff, E C. & Baker. P. J. 2002. Biology Today. An Issues Approach. 2/e. Taylor & Francis.

전방욱. 2017.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생명 편집의 기술과 윤리, 적용과 규제 이슈. 이상북스.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125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TEL 042-879-8318   |   FAX 042-879-8309

COPYRIGHT(C) 2022 BY KB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