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풀에서 온 유전자, 기후 위기에 강한 벼를 만들다
이형석 박사(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한국인은 흔히 “밥심으로 산다”고 말하지만, 정작 밥의 원료인 벼는 냉해와 가뭄에 매우 약하다. 매년 반복되는 이상저온과 강수 패턴의 변화는 수량 불안정을 키우고, 재배 한계 지역을 남쪽으로 밀어내며, 농가와 국가 식량 안보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기후위기가 상수가 된 지금, 한계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작물을 만드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남극 식물, 특히 남극좀새풀(Deschampsia antarctica)의 유전자를 활용한 환경 내성 벼 개발 연구다. 이 연구는 단순한 ‘냉해 저항성 벼’ 개발을 넘어, 극지 식물의 유전자를 정밀하게 도입하는 유전자변형기술과 이후 최소 변형만을 남기는 유전자편집기술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남극의 혹독한 실험실, 남극좀새풀의 생존 전략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 바톤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대략 –3.0℃ 안팎으로, 한 해 평균 기온 자체가 영하에 머문다. 일평균 기온은 1월 4℃에서 7–8월 –6.5℃까지 떨어져, 연중 200일 이상이 영하 환경으로 추정된다. 연 강수량은 약 500–700㎜ 수준으로 서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이 눈·진눈깨비 형태라 토양 수분 이용이 쉽지 않
다. 겨울철에는 해가 거의 뜨지 않고 하루 일조시간이 1시간 안팎까지 줄었다가, 여름에는 하루 18시간 이상 해가 떠있는 ‘백야에 가까운 장일 환경’을 보이는, 광주기 변동이 극심한 지역이다.
남극 하면 끝없는 얼음과 빙붕을 떠올리지만, 이 대륙에도 약 120종의 육상 식물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꽃과 씨를 맺는 현화식물은 단 두 종, 남극개미자리와 남극좀새풀 뿐이고 나머지는 선태류로 분류되는 이끼들이다. 남극좀새풀은 영하의 기온, 강풍, 낮은 일조량, 빈약한 토양과 건조한 공기라는 ‘식물이라면 피하고 싶은’ 조건을 버텨내며, 해안가 바위 틈과 펭귄·물범 서식지 인근에서 천천히 번식한다.
남극좀새풀은 벼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남극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외떡잎식물이다. 최적 생장온도는 약 13℃지만 0℃에서도 최대 광합성의 약 30%를 유지할 만큼 저온 적응력이 높고, 동결로 인한 세포 손상을 줄이는 결빙방지단백질과 각종 저온·건조 대응 유전자를 지닌다. 여름 평균기온 0–4℃, 강풍과 빈약한 토양의 바톤반도 해안에서 지의류, 선태류와 함께 군락을 이루며, 깊은 뿌리와 치밀한 잎 구조로 토양을 붙잡고 영양분이 부족한 바위틈과 펭귄과 물범 배설물로 축적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풀은 키 5–10㎝ 남짓의 다년생 잔디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적응 전략이 숨어 있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잎과 굵은 관다발, 깊고 복잡한 뿌리 구조 덕분에 토양에 단단히 몸을 고정하고, 관다발이 얼어붙지 않도록 세포 수준에서 동결·건조 스트레스에 특화된 대사를 가동한다. 이러한 특성은 남극좀새풀이 단지 “강한 풀”을 넘어,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식물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주요 작물에 이식하기 위한 모델 식물로서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극 형질’을 벼에 옮기는 과정
필자가 포함된 연구팀에서는 남극좀새풀의 뛰어난 극한 환경 적응력을 벼로 옮기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쳤다.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어떤 유전자가 핵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남극좀새풀의 유용 유전자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기 위한 1단계로, 대규모 전사체(트랜스크립톰) 분석을 수행했다. 저온(4℃), 고염(300 mM NaCl), 탈수(PEG –0.6 MPa) 스트레스를 처리한 개체를 대상으로 대규모 유전자 발현 연구를 진행해서 약 3,110개의 스트레스 특이적 유전자를 찾았다. 이 안에는 LEA, dehydrin, ice recrystallization inhibition protein(IRIP)과 같은 대표적인 스트레스 단백질과, U‑box/F‑box 단백질, 전자전달 플라보단백질 등 신호전달과 단백질 분해 관련 후보들이 포함됐다. 이 데이터셋이 이후 CBF, GolS2, ADF 등 남극 유래 스트레스 내성 유전자를 선별해 벼 유전자변형 실험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남극좀새풀 유전자 활용 연구의 첫 번째 단계인 ‘유전자 지도 작성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별한 남극좀새풀의 극한적응 유전자를 작물에 옮기기 위해서는, 벼와 같은 주요 작물의 게놈 내로 도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변형기술은 극지 식물의 유전자를 기능 단위로 검증하고, 작물에서 그 효과를 재현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 도구로 활용된다. 유전자변형기술 중에서도 필자는 남극좀새풀의 유전자를 벼에 옮긴 다음 유전자가 지속적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과발현 기술을 활용했다.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것은 1차적으로 DNA에서 mRNA로 정보가 이동하는 과정인데, 항상 모든 유전자가 모든 상황에서 사용되지는 않는다. 생물의 세포에는 수만 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개별 유전자를 ‘전구’에 비유해 보자. 수만 개 전구 모두가 24시간 내내 다 켜져 있으면 에너지가 심각하게 낭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순간(특정 상황)에만 불이 들어오게 만드는 조절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러한 역할은 프로모터와 전사조절인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남극좀새풀의 극한환경 적응 유전자들은 대부분 매우 춥거나 건조한 특수한 환경조건에서만 발현되도록(전구에 불이 켜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이 유전자들을 벼에 옮긴 후 내가 원하는 조건(항상, 24시간)에서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조절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인 ‘유전자 발현 조절 벡터 제작 단계’였다.
세 번째 단계는 ‘형질전환 벼의 특성 분석 단계’였다. 선별한 남극좀새풀 유전자가 벼의 세포 안에서 계획한 대로 유전자 발현이 이루어진다면, 기존에 벼가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유전자에서 유래한 정보를 담고 있는 mRNA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다시 여기서 세포 내 일꾼인 단백질이 만들어져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새로운 일꾼이 추위에 대비하거나 가뭄에 대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면 제작된 GM 벼는 일반벼에 비해 다양한 스트레스 환경을 더 잘 버티는 신작물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진행한 연구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
마스터 조절자 DaCBF4/7과 스트레스 신호 네트워크
C-repeat binding factor(CBF)는 식물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전사 조절인자로, 유전자 프로모터의 CRT/DRE 서열이라고 알려진 특정 서열에 결합해 저온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켜는 마스터 스위치 역할을 한다. 외부 온도가 낮아지면 세포막의 유동성이 낮아지고, 메신저로 작용하는 칼슘 이온과 활성산소가 세포내로 전달되어 CBF 유전자 발현이급격히 증가한다. CBF 단백질은 핵에서 LEA, dehydrin, 항산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신속하게 유도해서 세포 탈수와막 손상, 단백질 변성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유도해서 어는점 근처에서도 세포가 구조와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식물의 냉해 저항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극좀새풀에서 분리한 CBF 유전자인 DaCBF7를 벼에 옮겨주어 과발현시켜 만들어진 GM 벼는 저온 조건에서 저항성이크게 향상되었다. 4℃에서 8일간 처리하면 야생형 벼의 생존율이 약 11%인 데 비해, DaCBF7 GM 벼는 79%까지 7배이상 생존율이 증가하는 놀라운 효과를 보였다. 또 다른 남극좀새풀 유래 CBF 유전자인 DaCBF4 역시 벼에서 발현시켰을 때 성장 저해 없이 냉해 저항성만 선택적으로 향상되는 특징을 보였다.
당 대사를 이용한 저온·가뭄 동시 내성 증가: DaGolS2
남극좀새풀은 저온과 탈수 조건에서 라피노스 계열 올리고당을 세포 내에 많이 만들어내고 쌓아둔다. 이러한 과정은 갈락티놀 합성 효소(Galactinol synthase, GolS)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남극좀새풀이 보유한 여러 GolS 유전자들 중에서도 DaGolS2 유전자가 냉해와 건조 조건에서 가장 빠른 반응을 보여 ‘극한 환경 전담 효소’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과정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DaGolS2를 지속 발현하는 GM 벼를 제작해서 스트레스 조건에서의 내성을 시험했다. 그 결과 4℃에서 8일간 처리한 저온 조건에서 야생형 벼의 생존율이 16–20% 수준인 반면, DaGolS2 GM 벼는 60% 이상으로 생존율이 3배 이상 증가했다.
특이한 점은, 앞선 CBF 계열 유전자에 비해 냉해 저항성 증대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가뭄에 대한 저항성이 함께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10일간 물을 주지 않으며 일반 벼는 10% 내외만 살고 대부분 말라 죽었지만, DaGolS2 GM 벼는 30% 내외의 생존율을 보여 3배 이상 높은 가뭄 저항성을 보였다. DaGolS2 GM 벼는 스트레스 조건에서 갈락티놀과 라피노스 등의 올리고당 함량이 크게 증가했고, 세포 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활성산소와 지질과산화 지표(MDA)가 크게 감소했으며, 총 엽록소 함량과 세포막 안정성(전해질 누출 감소)이 높아졌다. 이런 결과는 남극좀새풀이 올리고당 축적을 통해 세포 내 수분 균형과 단백질·막 구조를 보호하고, 동시에 항산화 기능을 강화하여 저온·건조에 적응함을 보여주며, 같은 과정이 벼를 추위와 가뭄으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였다.
세포골격을 ‘단열 재료’로 바꾸는 DaADF3
우리 몸과 식물의 세포 안에는 세포의 모양을 잡아주는 뼈대의 역할과, 물건을 나르는 도로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액틴이라는 아주 가느다란 실 모양 구조가 있다. 이 뼈대는 신기하
게도 딱딱하게 굳어있는 게 아니라, 길게 이어붙이기도 하고(조립) 끊어버릴 수도 있는(분해) 레고 블록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변화한다. 이런 블록 조립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바로 Actin-depolymerizing factor(ADF)이다. 식물이 갑자기 너무 춥거나 메마른 환경에 처하면, 살아남기 위해 세포 구조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하는데, 이때 전문가(ADF)가 투입되어 기존의 뼈대를 빠르게 부수고(절단), 스트레스에 잘 견딜 수 있는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조립한다.
남극좀새풀이 보유한 여러 개 ADF 유전자들 가운데 DaADF3는 저온과 가뭄 조건에서 강하게 발현이 유도되는 특수한 유전자다. DaADF3를 과발현하는 GM 벼를 제작해서 분석한 결과, GM 벼는 4℃에서 7일 처리 조건에서 생존율이 44–62%까지 향상되었고(일반 벼는 8%), 같은 조건에서 엽록소 함량은 일반 벼의 0.65 mgg⁻¹ 수준 대비 16배 증가한 11 mg g⁻¹ 이상을 유지했다. 이는 마치 추운 지역에서 단열이 잘되는 집을 짓는 것처럼, 남극좀새풀이 ADF를 통해 액틴 구조를 냉해 친화적인 형태로 재구성하여 세포를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해당전략이 벼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DaCBF–DaADF–DaGolS2로 이어지는 복합 조절망은, 남극좀새풀이 극한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적 ‘회로도’를 보여주며, 이를 벼에 옮겨온 것이 현재의 GMO 연구라 할 수 있다.
GM 기술이 여는 이점과 미래
남극좀새풀 유전자를 활용한 GM 벼 연구는, 기후위기 시대 농업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실험장이자 모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생산성과 재배 안정성이다. 남극 유래 유전자를 도입한 벼는 냉해와 가뭄이 동시에 오는 복합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생존율과 광합성 능력을 유지해, 해마다 들쭉날쭉한 수량 변동 폭을 줄이고, 지금
까지 벼 재배가 어려웠던 지역까지 경작 가능 영역을 넓힐 잠재력을 보여준다. 전통 육종만으로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극한 환경 내성 형질을, 검증된 유전자 단위로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품종 개량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GMO 제작과 연구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어떤 유전자가, 어느 조직에서, 어느 수준으로 발현될 때 최적인지)는 이후 CRISPR와 같은 유전자편집기술의 설계도로 활용될 수 있다. 벼에서 입증된 DaGolS2, DaADF3, DaCBF 네트워크는 밀·보리 등 다른 벼과 작물과 고위도·고산·건조 지역으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이 된다.
앞으로는 한 번 심어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 작물, 광합성 효율을 극대화한 고효율 작물, 그리고 이 연구에서처럼 냉해와 가뭄을 동시에 견디는 작물이 어그테크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저온·건조·방사선·미세중력이 겹치는 우주 환경에서 작물이 견뎌야 할 조건을 생각하면, 지구에서 가장 복합적인 스트레스 환경인 남극에 적응한 남극좀새풀의 유전자원은 유인 우주 시대를 뒷받침할 우주 작물 개발의 가장 유망한 출발점 중 하나다. 남극의 거친 바람을 이겨낸 작은 풀 한 포기가 지구 반대편 논밭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 위기라는 벼랑 끝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과학은 지금도 유효한 인류의 희망임을 보여준다.